중고 서적 구매에는 아무 특별한 묘미가 없다. 그 짜릿한 흥분은 다른 사람이 먼저 차지했다. 나는 자포자기에 빠졌을 때가 아니면 헌책은 사지 않는다. (생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반들반들한 새 책으로 사고 싶지가 않다니, 내겐 정신의 빈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돈 드릴로나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책은 정가를 주고 사는 것을 명예로 여겨야 한다. 이건 명예의 문제란 말이다.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2018)" 조 퀴넌

자포자기에 빠져 중고책을 샀다.
나는 절판된 책이 아닌 이상 중고책은 사지 않는다는 주의였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으면 책을 살 때 절대 모험을 하지 않게 된다.
베스트셀러나 인기작가의 작품은 믿고 거르며 확실히 나의 취향이 보장된 것만 사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제 돈주고 사기는 무섭고 서점이나 도서관 가서 대충 빌려보자니 찔리는 책들을 한번 골라보았다. 그 와중에 우연히 충동구매하게 된 책들도 있다.
마션(2011), 앤디 위어
명탐정의 규칙(1996), 히가시노 게이고
Dawn of the bunny suicide(2011), 앤드류 라일리
블러드 차일드(1995), 옥타비아 버틀러
침대 밑 악어(2002), 마리아순란다
마션은 영화팬으로써 구매했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재밌든 재미없든 일단 보고나면 원작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나를 찾아줘'가 그랬고 '아가씨', '헝거게임'도 그랬다. 마션 역시 영화가 흥행한 이후 서점에서 열심히 광고해댔지만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원작이 몹시 궁금하긴 했다. 원작소설이 영화의 재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미 알아버린 줄거리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명탐정의 규칙은 오랫동안 살까말까 고민하던 책이다. 기존의 추리소설 공식을 꼬집고 비튼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지만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점이 거북스러워 계속 미뤄뒀다. 일본의/양산형/베스트셀러라는 내가 믿고 거르는 삼종세트가 다 들어있어서 절대 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중고서점에서 거의 반값으로 나와있는 것을 보니 약간의 자비가 생겼다.
Dawn of the bunny suicide는 "자살토끼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다. 중학생 때 전 시리즈인 "자살토끼"와 "돌아온 자살토끼"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3편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충동구매했다.
블러드 차일드는 작가 때문에 충동구매했다. 옥타비아 버틀러를 처음 알게 된 곳은 alt. SF의 '월간 SF 웹진'이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기억이 나서 검색해보니 작가가 흑인여성이라고 해서 집어들었다. 재미있으면 작가의 나머지 책은 새 책으로 구입할 예정이다.
침대 밑 악어도 제목이 끌려서 충동구매했다. 김언수의 "캐비닛(2006)"에는 한 정신질환 환자가 언급되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믿는다. 캐비닛 속 환자의 레퍼런스가 "침대 밑 악어"가 아닐까싶어 궁금해 집어들었다.
쓰고보니 사려고 산 책은 두 권 뿐이고 세 권은 완전 충동구매다. 이게 중고서점의 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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