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책을 좀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고는 한다.
오만했던 시절에는 이책저책 얘기하며 용감하게 추천해줬던 것 같다.

요즘에는 딱 잘라 거절한다.
책을 추천해주는 것은 소개팅을 해주는 것만큼 어렵고 성공률도 극도로 낮은 일이다.
추천해 준 책이 상대방의 취향에 딱 맞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도와준다.
어떠한 분야의, 어떠한 책을 원하고, 책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명확한 사람은 참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애매하게 단지 '책'을 읽고 싶다는 말의 의미는 다음 두 가지 경우의 수를 갖는다.
1.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뭔가 자기 계발을 위한 보람 찬 교양 활동을 하고 싶다.
2. 정말로 책을 너무 읽고 싶은데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 경우의 공통점: 책하고 담을 쌓았다.
첫 번째의 경우는 책을 읽지 않으면 좋겠다. 보람 찬 교양 활동이 꼭 책일 필요는 없다. 첫 번째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책을 평소에 많이 읽지도 않았을 것이고 책이 절박하지도 않다. 그 동안 책을 읽지도 않았고 절박하지도 않으면 이제 와서 그게 재밌을 리가 없다.
보람 찬 교양 활동은 이 세상에 많고 많다. 스스로를 고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살면서 마라톤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 동안 내가 마라톤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안 한 이유는 말 안 해도 모두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마라톤 코스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두 번째 경우는 책을 추천해주기 보다는 직접 서점에 가라고 얘기한다.
책 쇼핑은 옷 쇼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쇼핑은 간편하지만 실제로 내용물이 어떤지 받아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리뷰를 아무리 보아도 과연 내게 맞는 것인지 내 손에 쥐기 전까지는 모른다.
또,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고수가 된다. 열심히 골라서 옷을 사 놓고 맘에 안들어서 옷장에 처박아 놓는 경험은 누구나 있다. 그렇게 옷을 처박다보면 언제부터는 척 봐도 내가 입을 옷인지 안 입을 옷인지 알게 된다. 쇼핑 실패 확률이 점점 낮아진다. 인터넷 쇼핑도 높은 성공률로 할 수 있게 된다.
책도 사 놓고 책장에 처박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스스로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냄비 받침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덤. 나중에는 휘리릭 넘겨보거나 단순히 제목과 목차만 봐도 어떤 책인지 대충 감이 온다.
주의: 도서관에 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내 돈 버리고 냄비 받침 보면서 정신차려야 신중함과 진심이 담기게 된다.
책도 무수히 많은 취미 중 하나이고 쇼핑 목록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의 취향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온전한 한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맞는 책을 찾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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