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Zinc/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은 척 하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 감상하지 말고 바라보라

by Zinc Finger 2018. 7. 8.



어떤 책인가

러시아 사람이 쓴 러시아 문학이다.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러시아 여성들의 인터뷰 내용이 그대로 실려있다. 각 챕터의 첫 부분에 작가의 독백이 들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책의 대부분은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다. 약 200명의 여성들이 인터뷰 대상자로 등장한다. 여성들은 자신이 어쩌다가 전장으로 가게 되었는지, 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책을 보면 이들이 전쟁에서 한 역할은 다양하다. 흔히 전쟁에서 여성이 할 거라고 생각되는 간호병, 취사병, 세탁병 외에도 의무병, 저격병, 공병, 지뢰제거, 전투기 조종 등 우리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역할도 해내었다. 


그런데 잠깐. 이 책은 뭐가 특별할까?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 에세이는 물론 수 많은 영상매체에서 재생산되었고 또 재생산되고 있다. 그 와중에 이 책은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는데 어떤 점이 훌륭했던 걸까? 책의 훌륭함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온다.


1) 전쟁을 그리는 방식

2) 전쟁을 이야기하는 화자의 전환


이 책의 가치를 잘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흔히 접했던 전쟁 관련 콘텐츠에 대한 검토가 먼저 필요하다.



전쟁의 참혹함 감상하기

기존에 내가 보았던 전쟁 콘텐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쟁의 참혹함 감상하기'다.


유명한 전쟁 영화들을 한 번 보자.



대한민국 1000만 관객 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2004)'

전쟁 영화의 흐름을 바꿨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전쟁 영화의 흐름과는 다른 새로운 연출을 보여줬다고 평가 받는 '덩게르크(2017)'


세 영화가 전쟁 영화계에서 어떤 위치를 갖는지 뭐가 더 잘났는지 비교하려고 나란히 놓은 것은 아니다. 전쟁을 그린 영화 중 저 세 작품이 국내에서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서 인용했다. 

일단 위의 세 작품의 공통점은 '전쟁의 참혹함과 전쟁 속 휴머니즘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 영화를 보며 그 영상미를 감상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고 배경 음악을 감상하고 연출에 감탄하고 끔찍함도 느끼고 웃거나 눈물도 흘린다. 그렇게 우리는 극장에서 팝콘을 물고 전쟁을 감상한다. 그렇게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소비하고 즐겨왔다.


미디어에서 그리는 것이 미화된 전쟁이든 끔찍한 전쟁이든 영웅 없는 전쟁이든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뭐가 새롭고 뭐가 진부하던 간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영화가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전쟁 장면을 미학적으로 적절한 앵글로, 극적인 대사로, 장엄한 음악으로, 아름다운 배우의 얼굴로 재현한다. 


영화의 시선은 전쟁의 필연성과 그 곳에서의 비극을 우리에게 ‘관람시킨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한 번 울고 눈물을 찍어내면 끝이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며 그 영화가 얼마나 전쟁의 참혹함을 잘 그려냈는지, 얼마나 고증을 잘 했는지 평가한다. 전쟁 영화들은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전쟁의 참혹함을 보며 전쟁의 비극을 깨닫고 그 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다른 예술 분야는 다를까? 아래의 두 그림을 보자. 두 그림은 학살 장면을 그렸다.


 

이 그림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부당한 폭력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칙칙한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다. 주인공은 이제 막 학살 당하려는 상태인데, 깨끗한 흰 옷을 입고 조명을 받고 서있다.



이 그림은 '폭력의 미학'을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인물들은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림 전반을 지배하는 도형은 곡선과 소용돌이다. 왕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죽음을 당하기 전에 자신의 신하와 첩들을 다 죽이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의 물건들도 파괴하도록 한다. 그림 모서리에서 이 폭력을 무신경하게 바라보는 인물이 왕이다.


두 작품 모두 '참혹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 폭력에 대한 그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의 구도나 색채가 적절하다는 점이다. 두 그림 모두 내용 없이 물감이 묻은 형태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너무 아름답다.



예술 속 전쟁의 얼굴은 아름답다

영화나 그림이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그게 뭐든지 간에 아름답다. 예술은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사람의 마음을 끌기 마련이다. 그것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다. 


감독의 앵글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찾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한다. 영화와 그림은 모든 것을 미화해버린다. 아무리 추하게 그리려고 해도 아름답다. 미학에서 탄생한 것은 미학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작품은 상영되고 전시되고 책으로 출판되어 사람들에게 읽힌다. 우리는 그 참혹함을 감상하며 박수 친다. '전쟁의 참혹함'을 잘 그려내었다고.



전쟁의 참혹함 바라보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책은 참혹함을 미적 대상화하지 않는다. 그냥 날 것의 독백을 내던진다. 알렉시예비치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을 감상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라고.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테니까.


알렉시예비치는 책에 대한 평가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정제되지 않은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이 책이 얼마나 미학적으로 완벽한지, 필력은 어떤지 문체는 어떠하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있었는지 우리는 말할 필요가 없다. 


전쟁영화를 봐도 사실이 아니고 책을 읽어도 사실이 아닌 거야. 그러니까, 그게 달라... ... 뭔가가 달라. 그렇다고 전쟁을 직접 겪은 내가 이야기하면 정확하냐. 그것도 아니거든. 전쟁은 그렇게 끔찍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어.


책에 기록된 참전 여성들의 말들은 가끔은 두서 없고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하기도 한다. 행간과 말줄임표 속에도 많은 기억이 함축되어 쉽게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진짜 전쟁을 보았고 전쟁 속의 '인물'이 아니라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침묵을 깬 참전 여성들

책의 두 번째 가치는 바로 전쟁을 이야기하는 화자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전쟁을 그린 콘텐츠에서 우리는 대부분 남성의 시각을 취한다. '남성적'인 시각을 취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쟁 영화를 볼 때, 전쟁 게임을 할 때 우리가 이입하는 대상은 남성이다. 전쟁에 참전한 남성이 여성 보다 많고 또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 중 남성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전쟁 영화를 찍거나 전쟁 게임을 만들 때 자문을 해주는 사람은 대개 남성일 것이며 제작하는 사람들, 출연하는 사람들,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람들 역시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에 대한 기존의 시각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남성이 화자가 되는 전쟁은 '우리 부대가 어디를 어떻게 다 쳐부쉈다'거나 '내가 뭘 해서 훈장을 받았다'거나 '대단한 놈이 있었어'라는 식의 무용담 중심이다. 


신문에서 떠드는, 영웅들과 공훈이 주인공인 전쟁.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전쟁.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궈치기하려는 이 욕망에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에.

남성 중심의 전쟁 콘텐츠에는 영웅, 승리, 아군, 적군, 전우, 훈장이 있다. 간혹 이들의 이야기에도 참혹함과 비극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것들 역시 전쟁의 영광을 부각시키는 도구로 소비된다. 책은 이러한 주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실제로 출판되기 전까지 많은 거절을 당했다. 거절을 당한 이유는 그것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쟁에 대한 이미지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알렉시예비치는 반문한다. 무엇이 제대로 된 전쟁이고 어떤 시각이 전쟁을 제대로 본 것이냐고.

벌써 2년째 계속되는 출판사의 거절. 이 일에 대해 잡지들은 입을 닫는다. 답신은 매번 똑같다. 전쟁이 너무 무섭게 묘사되었다는 것. 끔찍한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것. 선도적이고 지도적인 공산당의 역할이 없다는 것. 한마디로, 제대로 된 전쟁이 아니라는 얘기다. (생략) 도대체 어떤 게 제대로 된 전쟁이란 말인가? 장군들이나 현명한 총사령관이 등장하는 전쟁? 피나 더러운 이가 나오지 않는 전쟁? 영웅들이나 영웅적인 공훈을 이야기하는 전쟁?

책은 남성의 이야기 대신에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흥미롭게도 책 속 여성들은 전쟁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영움담이 아니라 삶이 있고 감정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어떠한 전쟁 이야기보다 호소력이 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전쟁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며 참혹하며 거북하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포기했다.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우는 것도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뻘 소리: 책 제목에 대해서
어쩌면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여성'의 전쟁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냐고? 내가 남성이 본 전쟁, 여성이 본 전쟁으로 나누어 이야기했다고 해서 꼭 전쟁을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나누어 환원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성별을 떠나서 남성이나 여성이나 근본적으로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지 오랜 기간 동안 전쟁 콘텐츠에 대한 주류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적했을 뿐이다. 전쟁에 대한 기존의 주류적 시각과 책이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 정말 중요한 부분은 이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언젠가 책 제목이 바뀌면 좋겠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참고하면 좋은 작품

영화 '액트 오브 킬링'(2012)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처럼, 이 영화 역시 전쟁과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