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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c/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은 척 하기] "파운데이션 시리즈 1(1951)" 은하제국 흥망사

by Zinc Finger 2018. 6. 29.


판타지에 J.R.R. 톨킨이 있다면 SF에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있다. 

톨킨을 제외하고 판타지를 이야기하기 힘든 것처럼 아시모프를 제외하고는 SF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아시모프 세계관의 정수를 담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먼 미래의 우주 이야기로 ‘은하제국’의 흥망을 그리고 있다. 대학교 때 종이책으로 접했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얼마전 교보 ebook으로 다시 접해보았다. 이 리뷰에서는 파운데이션 1에 대해 소개보려고 한다.



작가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에서는 아시모프라는 이름이나 파운데이션 시리즈보다 영화 ‘아이 로봇’이 더 유명하다. 작가인 아시모프는 영화 아이 로봇의 원작소설을 쓴 사람이다! 또한, 다양한 로봇 영화에서 언급되는 그 유명한 ‘로봇공학 3원칙’이 아시모프의 소설에서 나왔다!

 


파운데이션 줄거리 (스포약간)

해리 셀던이라는 역사심리학 학자가 등장해 번영하는 은하제국의 쇠락을 예언하고 그에 따라 이어질 3만년 간의 ‘암흑 시대’에 대해 경고한다. 셀던이 말하는 암흑 시대는 사회조직이 붕괴하고 인간 개개인이 고립되는 기간이다. 셀던은 이 시기에 벌어질 끊이지 않는 분쟁으로 인해 인류의 지식은 잊혀질 것이며 과학기술 역시 퇴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셀던의 말에 의하면 은하제국의 영광은 먼 과거가 될 것이며 인류는 우주 역사 상 가장 침체된 시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셀던은 이러한 암울한 예측과 동시에 이 암흑기의 기간을 1000년으로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은하제국의 한 구역에 ‘파운데이션’을 건설하는 것이다. 파운데이션은 지식인들이 거주하게 될 행성도시로, 이들은 여기에서 제국의 지식과 과학기술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을 편찬하게 된다. 


파운데이션 1에서는 해리 셀던이 이야기한 예측과 대안 이후 약 200년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해리 셀던의 예언과 은하제국의 다양한 군상이 서로 교차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편에서 집중하는 시기인 예언 후 50년, 80년, 100년 후이다. 각 시기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 존재하며, 이들이 맞닥뜨리는 시대의 과제가 존재하게 된다.


써놓고 보니 해리 셀던이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고 이 사람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만 같다. 그러나 서사의 중심인물은 각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서로 다른 인물들이다. 첫 번째, 두 번째 과제에서는 샐버 하딘 시장, 세 번째 과제에서는 호버 말로 시장이다.


 

파운데이션의 흥미로운 점이자 한계

이 소설이 흥미로운 점(혹은 한계일 수도 있는 점) 중 하나는 인간의 무대가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학적 본성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소설 속 역사의 흐름과 사건은 우리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역사현장의 틀에서 세부 설정만 바뀌어 있다. 


아시모프는 이러한 사건 앞에서 과거 인류가 반복해온 도전과 응전을 변주해서 보여준다. 소설의 이러한 점 때문에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소설의 서사가 실재 일어날 법한 일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또한, 매우 생소한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등장인물의 행동이 매우 그럼직해 보인다. 


물론, 책의 이러한 특징은 양날의 칼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이러한 특징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계로도 느껴진다. 소설의 틀과 세계관은 매우 참신하지만 소설 속 인물의 행동과 사고는 매우 진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터전이 전 우주로 확대되었고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사고와 육체가 현대 인간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 아쉽다. 아시모프는 파운데이션 1권에서 단 한명의 새로운 인간상도 제시하거나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진부함 때문에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평가가 절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이 재미가 작품에 대한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또한 이 책이 매우 오래전 출간되었다는 점과 장편 SF로서 선두의 역할을 했다는 점으로 보아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위에서 언급한 새로움을 기대하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파운데이션에 대한 비판거리

소설에 크고 자잘한 설정들이 마구 쏟아지는데 비해 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점, 소설에서 매우 다양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점(주요인물은 물론 조연, 단역으로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은 여전히 비판거리가 될 수 있다. 

 

특히, 여성 캐릭터의 부재는 파운데이션이 거대한 미래 서사시라는 점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시모프가 살았던 과거의 시대가 남성 위주였기 때문에 미래의 역사 역시 남성 위주로 그려졌을 수도 있다고 백번 양보해 봐도 파운데이션 1권 전체를 통틀어 여성 캐릭터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아시모프가 소설에서 보여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묘사가 충분히 여성 캐릭터에도 적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캐릭터에만 국한되어 버린 점이 아쉽다. 


아시모프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작가의 성별이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성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소설가의 역량일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박경리 같은 경우 소설 ‘토지’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우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점이 소설가로써 박경리가 높이 평가 받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소설가로써 아시모프가 가진 매우 치명적인 한계였다고 본다. 


재밌게도, 아시모프가 결혼을 한 후에 쓴 소설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잘 등장한다.



파운데이션의 소설적 가치

 위와 같은 한계점 때문에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그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거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이며 인간 역사에 대한 거대한 우화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나온 유명한 스페이스 오페라물은 대부분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세계관을 모티브로 하고 있거나 이에 대한 변형된 해석에 머무르고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 스타트렉 시리즈는 물론 여러 SF영화, 스타크래프트, 월드 오브 크래프트에서 역시 아시모프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말도 안 돼! 이건 절대로 파운데이션에서 영향 받은 게 아닐 거야!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라고 생각한다면 대부분 오산일 확률이 높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무리 독창적으로 우주제국 SF를 만들려고 해도 아시모프의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없는 것은 그 만큼 아시모프의 세계관이 방대하다는 의미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는 미래의 우주 공동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회현상, 문화, 군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어떤 이야기를 쓰더라도, 아시모프의 영향을 받은 SF물을 미디어로 접한 이상 이 세계관에서 완전히 독립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우리 시대의 인간상을 그대로 가져다가 환경만 바꾸어 놓은 오만가지 SF들은 여전히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뛰어넘기 힘들 것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