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한 서평은 다음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성되고 있다
1) 앎과 봄: 우리는 아는 대로 본다
2) 누드화: 남성적 시선과 검토된 여성성
3) 유화의 숙명적 굴레: 유혹하는 그림
4) 이미지 광고와 환상: 자본주의적 예술
개괄, 1), 2)는 앞 글에서 이야기했다.
[Zinc/: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읽은 척 하기] "다른 방식으로 보기(1972)" 어떻게 볼 것인가 (1)
나머지 두 키워드에 대해 이번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3) 유화의 숙명적 굴레: 유혹하는 그림
다음 두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맞춰보자.
발가벗은 채 여자가 드러누워 있다. 여자의 밝고 부드러운 피부와 가볍고 복슬한 붉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자세는 도발적이고 표정은 두려움인지 진지함인지 뭘 느끼는 표정인지 잘 안 보인다. 배경의 거친 바위가가 여자의 부드러운 몸, 머리카락과 대비된다.
여자는 벌거벗은 채 푸른 천을 하반신에 덮고 있다. 피부는 밝고 부드럽다. 표정은 얌전하고 자세는 정적이다. 푸른 천의 잔주름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그 촉감을 상상할 수 있다. 주변에는 지푸라기가 있고 배경은 짙푸른 숲이다.
여기 막달라 마리아를 그린 석 점의 작품을 보자. (생략)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막달라 마리아가 육체적 욕망이나 쾌락을 완전히 포기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무엇보다도 남자들이 탐내어 품어 보고 싶어 할 만한 여인으로 그려졌다. 그녀는 여전히 여전히 유화라는 방법이 유혹하는 대로 그려진 것이다.
주제에서 말하고자 한 바가 대상을 그린 방식 때문에 공허해지는 것이다. 회화는 소유자의 즉각적인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촉감을 자극하려는 원래의 경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제에 충실 한다면 회개한 막달라 마리아는 경건하고 무념무상무욕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의 피부와 머리카락은 엄청나게 탐스럽고 푸른 천은 온갖 기교를 동원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유화는 관객이 그림 속 인물과 물체의 표면을 느끼고 손으로 잡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위의 누드화 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화가 이런 식이다. 유화의 숙명적 굴레가 그렇다. 두텁게 칠해진 물감과 질감 표현이 유화의 본질적 매력이기 때문에 화가는 이것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책에서는 위와 같이 유화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이에 저항하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유화의 '실체성', 즉 실재하는 사물처럼 실감나게 그려내려는 유화의 속성을 블레이크는 극복하고자 했는데, 그의 이런 바람은 유화 전통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유화이다. 제목은 '간음한 여인'이다. 간음한 여인이 예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내용이다. 막달라 마리아 그림과 주제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 가지고 왔다.
여자에게서는 성적 매력을 찾을 수가 없으며 인물들의 머리카락은 질감 표현 없이 희뿌옇게 표현되었다. 옷주름에서 당최 실감은 찾아볼 수 없고 아 그냥 옷을 입고 있구나,만 느낄 수 있다. 표정 역시 실제적인 묘사없이 눈코입만 알아볼 수 있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물들의 자세를 통해 여자가 '회개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두 그림에 비해 블레이크의 그림은 확실히 보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두 그림에 비해 주제 전달은 확실히 되고 있다. 유화 기법 자체에 충실한 두 그림에 비해 블레이크의 그림은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에 충실했다. 블레이크는 유혹에서 탄생한 재료로 유혹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4) 이미지 광고와 환상: 자본주의적 예술
다음은 사진 한 장과 그 사진을 이용한 작품이다. 원본은 왼쪽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오른쪽이다. 오른쪽의 이미지는 티셔츠, 술, 담배, 스티커, 영화 등 온갖 공산품에 프린트 되고 온갖 매체에 실려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그림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책은 네 번째 장에서 현대 광고가 유화의 특성을 어떻게 답습하고 있는지 이야기 한다.
사실상 광고는 대부분의 미술사가들보다 더 철저하게 유화의 전통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광고는 미술작품과 그 관객(소유자) 간의 관계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아차렸고, 그 점을 이용하여 광고를 보는 관객(구매자)을 잘 설득하고 비위를 맞추어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유화는 사람을 유혹한다. 유화는 관객이 그림 속에 표현된 것들을 만지고 소유하고 싶어하도록 유혹한다. 광고는 하나의 이미지로써 소비자를 유혹한다. 유혹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 할 수 있다. 유화가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자체적인 '물성'을 이용했다면 광고는 잡힐듯한 '미래'를 약속한다. 또한, 유화가 '미학적인 단어'로 권위를 얻고 관객의 허영심을 채웠다면 광고는 '문화적 유산'을 통해 관객의 소비욕구를 자극한다.
첫 번째부터 이야기해보자면, 광고는 현재를 이야기하지 않고 항상 미래를 이야기한다.
광고가 실제로 제공하는 것과 광고가 약속하는 미래 사이의 간극은,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 자신이 느끼는 현재의 처지와 그가 되고 싶어 하는 처지 사이에 벌어진 간극과 일치한다. (생략) 그 간극은 매혹적인 백일몽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흔히 노동조건에 의해 또다시 강화한다. (생략) 노동하는 자아는 소비하는 자아를 선망하는 것이다.
광고는 소비자가 자신을 구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미래로 약속한다. 그것은 권력, 이성, 품위, 지위 등인데 사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광고는 이 구입할 수 없는 가치들을 구입할 수 있는 물건에 집어 넣어 소비자를 유혹한다. 아름다운 유화가 사실은 물감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사실 그 물건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치 물건을 구입하면 광고에서 이야기하는 가치를 우리가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믿는다.
두 번째로, 광고는 문화적 유산을 통해 관객을 유혹한다. 이 문화적 유산에 대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유화의 언어에는 이러한 모호한 역사적 시적 도덕적 참조물들이 언제나 현재로 존재한다. 그것들이 부정확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바로 유리한 점이다. 그것들은 진짜로 이해할 필요가 없이, 단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문화적 유산들을 회상하게끔 해 주기 때문이다.
광고는 흔히 귀족적, 신화적, 고전적인 이미지를 통해 물건을 고급화한다. 마치 그 물건을 사면 그러한 문화적 유산을 향유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여기저기 프린트 된 체 게바라의 얼굴 역시 광고가 문화적 유산을 이용한 예이다. 아니, 사실 더 나아갔다.
우리는 체 게바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쿠바의 공산주의 혁명가이다(사실 다양한 직업과 별명이 있지만 우리가 주로 소비하는 것은 혁명가의 이미지다). 지극히 공산적인 인물은 지금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혁명가 티셔츠가 웬 말인가. 체 게바라를 이용한 광고는 소비자로 하여금 역사적 인물을 소비하도록 유혹한다. 우리는 단순히 티셔츠를 사는 것이 아니라 혁명가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인물의 본질이 비록 현재가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이상과 괴리가 있더라도. 광고와 소비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 그 차체이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티셔츠'라고 구글에 검색해보았다. '자본주의식 부관참시'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서평 후기&뻘소리
곰브리치식 미술평론에 익숙한 나로써는 매우 혁명적인 책이었다. 곰브리치 미술사를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날로 먹는 글이 아니라 본 책을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예술 뿐 아니라 우리가 현대 매체 속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비판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편, 서평을 작성하는 동안에 내가 자꾸 고전적 미술평론 언어를 쓰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는 것' 속에 나의 서평이 갇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서평에 인용한 그림에 대해 설명할 때 이미지 자체를 나의 주관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읽은 척 하기가 아니라 어떤 부분은 내 생각이 마구 폭주해버리는 글이 나왔다.
더 읽어볼 책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1936 첫 번째 장에서 직접 언급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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