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뉴스에 '독서량'이라고 검색을 하면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뜬다.
동영상에 빠진 2030 … 3명 중 1명 "책 안읽는다"
문체부, 성인 연간 독서율 59.9%…독서량 8.3권 집계
지난해 성인 평균 독서량 10권…한 달에 1권도 어려워
대한민국은 '책 안 읽는 사회'다. 1년에 저만큼 읽었다는 말도 사실 잘 믿기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학교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인터넷서점 ebook 판매순위에는 판타지, 로맨스, 라노벨, 만화책, 성인용..들로 가득하다. 1년 간 읽는 책의 권수를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적인 책’으로 한정시킨다면 권수는 더 줄어들 것 같다. 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을까?
기사에서도 나오지만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간과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책이 아니어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취업준비, 직장에 지친 우리 현대인들이 껌껌한 밤에 집에 들어가서 찾는 것은 책이 아니라 텔레비전과 유튜브, 스마트폰이다. 사람들이 피곤에 푹 젖은 뇌를 푹신한 소파와 베개에 파묻고 생각할 필요없이 즉각적인 자극이 주어지는 영상매체를 찾는다한들 그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이것은 개인의 의지영역을 벗어난 문제로 보인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사람들에게 멍 때릴 여유를 주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넉넉히 갖도록 놔두지 않는다. 오죽하면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생길까. 멍 때리기 대회는 갑갑한 사회를 향한 해학적 항변이고 블랙코미디다.
책 안 읽는 사회에서 독서광이 된다는 것은 고독하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을 읽고 있으면 주변반응은 대충 이렇다. 대단하다(혹은 잘난척한다), 공부 이미 많이 했나보다, 여유롭다, 똑똑한 것 같다, 부럽다 등. 반응이 어쨌든지 간에 나는 바쁘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혼자 책이나 읽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다.
흥미로운 것은 나에게 던지는 그 몇 마디씩 속에 나도 책을 읽어야하는데가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에 여유를 저당 잡히고 공부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나면 책을 들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것이다.
그 친구들에게 독서는 ‘공부가 끝나면’, ‘취업하고 여유가 생기면’으로 극후후후후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책을 안읽는다고 시험을 못 보거나 취업이 안 되는 일은 없으니까. 과연 신자유주의 교육을 받은, 선택과 집중에서 우선순위를 확실히 판단하는 친구들이다.
현실파악 못하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만 주구장창 읽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도 그 친구들과 똑같다. 책을 읽는 것에 딱히 고상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내가 유튜브 대신 책을 보는 것은 책이 더 재밌기 때문이다. 나에게 독서는 평생을 함께해온 취미이고 나를 중2병에 빠뜨리고 다시 건져올려준 애증의 대상이자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이다.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버라이어티쇼와 유튜브를 보며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는 것 같이 나도 책 속으로 현실도피를 한다. 책장을 덮고 스마트기기의 종료버튼을 누르면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갈 것을 알지만, 내 머리와 눈 혹은 귀에 스쳐가는 활자와 웃음소리가 거짓인 것을 너무 잘 알지만.
왜, 다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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