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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일기] 법의학: 사람을 죽이는 가장 완벽한 방법

Zinc Finger 2019. 2. 25. 02:38

우리 학교는 법의학 교실이 개설되어 있는 관계로 1학년 때 법의학 수업을 듣는다. 국내외 미디어에서 많이 다룬 주제라 의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법의학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Image by Steve Buissinne from Pixabay  

법의학 수업에서는 인체의 손상(결과)을 보고 그 원인을 추정하는 법을 배운다. 드라마, 영화와 달리 법의학은 어떻게 죽었는가?를 다루지 왜 죽였는가?를 다루지는 않는다. 분석 결과를 검찰에게 넘겨 재판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철저하게 중립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체에 점모양의 출혈, 암적색의 피, 장기에 고인 혈액이 발견된다면 사망 원인은 질식사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어떤 형태의 질식인지는 시체에 남은 물리적, 화학적 흔적을 통해서 추정하게 된다. 질식사의 원인은 매우 다양한데(끈으로 졸림, 손으로 졸림, 산소결핍, 코와 입 차단, 기도 막힘, 호흡장애, 화학적 요인, 익사 등...) 그 원인에 따라 시체에는 각각 다른 흔적이 남는다. 만약 끈으로 질식한 경우 목에 나타난 흔적의 형태, 깊이, 색깔을 보고 사망 환경을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Image by Alexas_Fotos from Pixabay 

법의학 수업을 통해 깨달은 중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죽이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없다'이다.

 

가끔 영화나 웹툰, 드라마를 보면 살인범이 피해자를 죽여 놓고 마치 자살한 것처럼 혹은 사고가 난 것처럼 꾸며 경찰을 혼란에 빠뜨린다. 법의학을 배우고 나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몇 십 년 전에는 한국에 법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시체가 있어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미제사건으로 끝난 경우가 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법의학이 잘 자리 잡혀있어 분석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가족이 부검을 반대하는 경우는 좀 힘들 수도 있다.)

 

 

현장에 불을 지르면 어떨까?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는 방법이다. 

 

확실히, 사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도록 살해 현장을 망가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화재이다. 그러려면 아주 제대로 불을 질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방화를 준비하는 동안 살해범은 한국 곳곳에 깔려있는 수 많은 CCTV에 일거수일투족이 찍히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많고 많은 차량의 블랙박스에도 얼굴과 행동 경로가 고스란히 찍힐 것이다. 

 

불로 인해 시체가 많은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현대 기술은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줄 만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윤중진 법의학" 진지하게 법의학을 공부하는 의대생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