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nc/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은 척 하기] "소크라테스의 변명(B.C.)" 반지성주의가 이성을 살해하다

Zinc Finger 2018. 6. 7. 20:32

다비드의 그림은 늘 드라마틱하다. 그림 속 인물들의 제스처를 보면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다. 한 손에는 독배를 들고 하늘을 향해 반대 쪽 손가락을 치켜든 사람이 물론 소크라테스 선생님. 슬픔에 잠긴 제자들에게 말한다. "검증되지 않은 삶을 사느니 차라리 나는 여기서 죽는다."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에는 총 500명의 자칭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위해 모였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사형. 우리는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4대 성인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자인 소크라테스는 왜 고소를 당했고 사형을 당했을까? 이번 리뷰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플라톤의 저서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아는 척을 돕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덧붙여, 소크라테스가 21세기에 살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지 생각해보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는 무슨 변명을 했는가?

일단 책의 제목이 "변명"인데, 소크라테스는 무슨 변명을 한 것인지 정확히 아는 척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고소를 당한 죄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며 괴상하다. 소크라테스는 지하의 일이나 천상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을 믿음으로써 죄를 범했다.


저것이 과연 광장 '아고라'로 대표되는 아테네 지성사회에서 쓰여진 공소장이 맞는가? 정말 실화냐?라고 묻고 싶었다. 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기 때문에 저 세 가지 고소장 내용을 납득하기가 힘든 것일까? 기원전 아테네의 시대 상을 고려하면 타당한 고소일까? 


일단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소내용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들어보자.


나는 자연에 대한 사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생략) 내가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는 소문도 마찬가지고 근거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하나 천상의 일을 탐구한 적이 없으며, 탐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 가르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대가로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매우 가난했다.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지만 소크라테스는 강의료를 챙기지 않았다. 오히려 고대 아테네에서 유행한 학파 중 하나인 '소피스트'들이 철학을 가르친다는 명목 하에 젊은이들에게서 비싼 강의료를 챙겨 받았다. 실제로 대다수의 소피스트들이 철학이나 논리를 잘 모르는 반거충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공소 내용은 '멜레토스'라는 사람이 제기한 내용이다. 책의 대부분은 멜레토스의 공소에 대한 변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를 직접 불러내 자신의 물음에 대해 대답을 하도록 요청함으로써 멜레토스가 스스로 자신의 주장에 모순이 있음을 드러내도록 한다. 바로 그 유명한 '산파술'이라는 대화법이다.


누가 어떤 주장을 했을 때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네가 틀렸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 주장에 대한 추가적인 질문과 반박을 함으로써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주장에 모순이 있음을 깨닫도록 했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를 상대로 이 산파술을 했던 것이다. 책을 읽는 (혹은 읽은 척 하는) 우리는 멜레토스의 주장 속에 모순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멜레토스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 계속 우기기만 한다.


산파술을 통한 변명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청년을 선도하려는 아테네의 국가적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멜레토스는 이를 인정한다), 소크라테스 혼자 청년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청년들이 타락했다면 소크라테스 한 개인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국가적 노력의 잘못이 크다고 추론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다.

2) 국가 믿는 신은 '해'와 '달'로 표현되는데,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태양은 돌맹이고 달은 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을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저 주장은 자신이 아니라 아낙사고라스의 주장이며, 현재 유명 극장에서 저렴한 값에 상연 되는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가 자신을 두고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하다가 갑자기 무신론자라고 주장을 하는 등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변론에도 불구하고 유죄와 무죄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소크라테스는 유죄로 결정된다. 30표 차이로.



소크라테스가 고소당한 진짜 이유는?

책을 보고 있으면 정말 화딱지가 난다. 고소장 내용은 둘째 치고 소크라테스가 느꼈을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시대를 타고 전해진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고소당한 진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물이 날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고소당한 이유가 자신이 너무 '현명해서'라고 말한다. 정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친구 '카이페론'이 델포이 신전에서 받은 신탁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카이페론은 신전의 무녀로부터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라는 대답을 듣고 온다. 소크라테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진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답을 내릴 수가 없어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직접 현명한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한다. 다음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나의 의무를 실행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가장 명성이 높은 사람들은 오직 가장 어리석을 뿐이며, 그다지 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더 현명하고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략) 이 같은 탐구로 말미암아 나는 최악의, 그리고 가장 위험한 적을 만들었으며 또한 많은 비방을 불러일으키고 현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행동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타강사가 된다. 젊은이들은 소크라테스가 점잖은 체 하는 지식인들의 주장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비논리성을 드러내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젊은이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가고, 이를 모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의 시험을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알게 된 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왜 '나'에게 화를 내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라고 말한다.

신은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예로 든 데 지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신은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그의 지혜가 사실은 아무 가치도 없음을 알고 있는 자가 가장 현명하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시게 되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다. 그 이유는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너무 똑똑했고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었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청년들 때문에 자신의 무지가 드러났을 때 자신의 지성을 더 갈고 닦을 생각을 하는 대신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아테네의 반지성주의가 이성을 살해한 것이다. 


특히, 법정에서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당당한 모습과 아테네 시민들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은 재판관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나 같은 사람을 다시 쉽게 찾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생략)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부착해놓은 등에이며, 따라서 하루 종일 어디서나 한결같이 여러분을 붙잡고 각성시키고 설득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략) 아니토스가 설득하는 대로 쉽게 나를 죽여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신이 여러분을 돌보기 위해 여러분에게 또 다른 등에를 보내지 않는 한 나머지 생애 동안 줄곧 잠만 자게 되리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세상에나... 사형을 당할지 안당할지 목숨이 달린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형량을 받아야 마땅할지 제안해야 하는 타이밍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망 플래그.


나는 어떤 형벌을 제안해야 합니까? (생략) 나는 개인적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하며, 개인적 이익을 구하기에 앞서 덕과 지혜를 추구해야 하고,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기에 앞서 국가 자체를 돌봐야 하며, 또한 이것이 인간의 행동에 있어서 지켜야 할 순서라고 여러분 각자에게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어떠한 형벌을 주어야 합니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돈이 없기 때문에 벌금을 낸다면 은화 1므나만을 지불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혹은 자신의 친구들이 도와주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은화 30므나까지 지불할 수 있다고 말한다. 1므나가 고대 아테네에서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당최 모르겠지만 매우 푼돈임에는 틀림없다. 


형량을 정하는 2차 투표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 받는다. 80표 차이로.



인간의 조건
소크라테스가 목숨을 걸고 재판관들을 열 받게 한 이유는 뭘까. 나는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인간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다고생각한다. 

책을 보니 그 시대에는 유명인사나 현자가 재판장에 섰을 때 가족들까지 불러와서 울고불고 선처를 부탁하는 게 정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그런 사람들처럼 울면서 애원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첫 번째 이유로는 그러한 행동이 진실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꺾고 목숨을 구걸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이 이 법정에서 굴복한다면 자신에 대한 고소를 인정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애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맹세을 져버리는 것이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깨부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망플래그를 알았을까. 아마도 알았을 것 같다. 아테네 시민들이 얼마나 아둔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자존심과 감정적인 성격이 자신을 고소하고 결국 죽일 것임을, 알았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해서도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품위를 보였다. 죽음을 대하는 소크라테스의 자세는 인간 존엄의 표상이며 인간의 지성이 다다를 수 있는 이성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험을 헤아려서는 안 됩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면서 오직 올바른 행위를 하느냐 나쁜 행위를 하느냐, 즉 선량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악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하는 것만 고려해야 합니다. (생략) 죽음이 최대의 선인지 아닌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최대의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무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요?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소크라테스의 운명

소크라테스가 21세기에 살고 있었다면 다른 운명을 맞았을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타인의 무지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며 인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불리한 입장에 처해도 죽을지언정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고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가. 씹선비? 위선자? 진지충?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을 미워한다. 현대 사회는 소크라테스를 성인이라고 칭하고 현자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실제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논법을 쓰면 잘난 척 한다고 싫어한다. 불의와 사회의 부당한 압력에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사람을 부적응자라고 손가락질 한다. 반면 불의에 순종하는 모습을 '현실'이라는 핑계로 정당화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 따위의 케케묵은 말만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보여준 고대 아테네의 반지성주의와 어리석음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이 나아졌는가?


문득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유시민 후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유시민은 경기도 발전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대한민국이 있어야 경기도도 있지, 대한민국이 없는 경기도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이걸로 표가 다떨어진다고 해도 양심껏 말합니다. 경기도지사로 국익도 함께 생각하면서, 국가 균형 발전 속에서 경기도 발전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시민을 소크라테스와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단지 유시민의 저 말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할 뿐이다. 유시민은 자신이 경기도지사가 되었을 때 경기도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 힘쓰겠다고 이야기했다. 유시민의 말은 지역주의를 벗어난 정치적 올바름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민의 표가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은 저렇게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정치이고 정의였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경기도지사가 되지 못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저 말 때문에 안됐다고 생각할 만큼 내가 순진하지는 않다.